"북두천마 말골마을 스토리텔링" 말골마을은 백제 때는 부시이현(혹은 두시이현), 신라 때는 이성현, 고려와 조선 때는 부리현에 속했던 곳으로, 마을은 조선시대 초기 통칭 경당두(서당골)라고 불러오던 지역이다. 부근에서 발굴되는 와당의 흔적으로 보아 조선시대초기에는 많은 기와집이 자리를 잡았던 지역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말기에 현재 두곡(斗谷)에마을이 들어서고, 미량리가 마을로 등장하면서부터 양곡리의 자연 부락은 미랭이를 비롯해 말골(斗谷), 서당골(경당두), 유문리 등이 있었다. 양곡리(陽谷里)라는 현재의 행정상 지명은 일제 시대인 1914년 미량(美陽)의 `양`과 두곡(斗谷)의 `곡`을 합쳐서 얻은 이름이다. 이처럼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두곡(斗谷)마을을 마을사람들은 그 형상이마치 곡식을 되는 풍성한 말(斗)”로 인식하여 “말골마을”로만 여겨져 왔다. 그리고 두곡(斗谷) 마을과이웃한 불이리(不二里)는 해평 길씨(海平 吉氏)의 집성촌으로 고려 말 삼은의 한 사람인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의 외가로 그의 아버지(吉元進)때부터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두 개의 비가 있다. 백이숙제의 찬양 비문을 모방했다는 백세청풍(百世淸風) 과 송인(
금산군 부리면은 지난 2일 양곡리에 위치한 순국의적비에서 제72주년 순국의적 제향 행사를 가졌다. 이날 박범인 금산군수를 비롯해 11․2동지회 회원 및 유가족, 지역발전협의회, 이장협의회, 부리면 유림회 등에서90여 명이 참석했다. 순국의적 제향은 6․25전쟁이한창이던 1950년 11월2일 부리지서를 급습한 인민군 600여 명과의 전투에서 용전분투한 부리면 청년방위대 33인의 나라사랑 정신과 고귀한 희생을 되새기기 위해 매년 진행되고 있다. 당시 전투 참여자로 구성된 11․2동지회는 지난 1963년 6월순국의적비를 세우고 매년 11월 2일 제향을 올려 순국하신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박범인 금산군수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신 선열들의 희생으로지금의 자유와 평화가 존재할 수 있다”며 “청년방위대 33인의 애국정신을 본받아 나라사랑의 마음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