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라는 단어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었다.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는 운명론자도 있고 운명은 사람의 힘으로 개척할 수 있다는 운명 극복론자도 있게 마련이다. 운명론자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소극적인 면이 두드러지고 극복론자는 타개와 극복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 악성 베토벤은 교향곡 제5번 운명에서 이러한 운명의 모습을 음악을 통해서 그려냈다. 가득 차 넘치는 전투력, 강한 기백, 불굴의 정신을 그려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갈파하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교향곡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으로 유명세를 탄다. 문재인대통령도 선거 전에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그의 운명은 확고한 지지 세력인 문빠와 대깨문들이 철통같은 수호신으로 분장하여 부동산실패, 조국문제, 소득주도성장 허구, 일자리 감소 등 국민의 외면을 받으면서도 아직도 청와대는 문제의 핵심을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와중에 멀리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조직으로 이름을 날리는 탈레반이 정권을 거머쥐었다. 탈레반은 20년 전 뉴욕 무역센타를 무너뜨린 9.11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의 후신이다. 미국은 건국 이래 본토에서 처음으로 벌어진 대
1945년8월15일은 한국으로서는 진정 역사적인 날이다.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이 애써 무시해 왔던 왜구(倭寇)들의 계략에 걸려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는 치욕을 겪은 지 35년 만에 그 질곡을 벗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서 창씨개명을 강요받았으며 소위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미명하에 멀쩡한 조선 사람이 일본의 황군에 편입되어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다. 공출과 징용으로 재산과 노동을 모두 그들에게 빼앗겼다. 이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키고 독립군이 되어 국내에서 혹은 중국 만주벌판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며 임시정부를 조직하여 어엿한 정부로서의 역할도 했다. 임시정부 산하에는 광복군을 만들어 만주에 있는 일본 정규군과 맞싸웠으며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는 총기와 군인의 절대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첩을 이루는 등 조선인의 기개를 만방에 떨쳤다. 특히 전쟁말기에는 미군과의 협조로 OSS부대를 창설하고 한반도 상륙작전에 대비할 만큼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도 했다. 장준하 김준엽 노능서 등은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한 후 광복군 장교가 되어 OSS요원으로 상륙작전의 선봉이 되고자 했으나 일제의 항복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분루(憤漏)를
태풍보다 더 센 게 허리케인이다. 태풍은 폭풍우를 동반하며 바람과 물이 힘을 합쳐 휩쓸어 버리지만 허리케인은 바람의 중심에 힘이 모아져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하늘로 빨아올린다. 수km의 반경 안에 들어있는 모든 물체는 큰 빌딩조차 뽑아내는 무서운 힘을 과시한다. 인간의 힘으로 이를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은 천재지변의 위력이다. 이번에 제일야당 국민의 힘 당대표 선출을 둘러싼 예선을 강타한 이준석의 돌풍은 가히 허리케인 급이다. 초선의원이 주축이 된 몇몇 젊은이들이 도전을 선언했을 때 중진급 주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50년 전에 야당이었던 신민당에서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 세 사람이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기득권자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권위에 가득 찬 유진산총재는 구상유치라면서 관심을 껐다. 그러나 혁신을 바라는 국민과 당원의 열화 같은 성원은 대선후보 경선에서 흥행을 일으키며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하면서 뒷전에 서있던 김대중의 극적인 승리를 보여줬다. 수락연설문까지 써놨던 김영삼은 허탈했지만 승복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때부터 양김의 경쟁은 20년이 지난 후에야 빛을 보며 막을 내렸다. 최고지도자로 각광 받았던 이철승은 결선에서 김대중을 밀었으나 호남맹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