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는 전지공장 화재사고 종합보고서 ‘눈물까지 통역해달라’가 9월 1일부터 시중 서점을 통해 판매된다고 26일 밝혔다.
도는 앞서 화성 전지공장 화재사고 1주기를 맞아 참사의 전말과 원인, 대응 및 정책 전환의 과정을 담은 종합보고서를 지난 6월 24일 발간했다. 경기도 전자책 누리집(ebook.gg.go.kr)에 게재돼 누구나 열람할 수 있으며, 공공기관·도서관·이주민 지원기관에는 무상 배포한다.
오는 9월 1일부터는 교보문고(광화문·강남·광교·인천점) 수도권 주요 4개 지점과 온라인 서점을 통해 유료 판매가 시작되며, 온라인 선판매는 8월 27일부터 교보문고 온라인몰·예스24·알라딘에서 진행된다.
책은 ‘1부 경기도의 대응’과 ‘2부 경기도 전지공장 화재 조사 및 회복 자문위원회의 권고’로 이뤄졌다.
1부에서는 사고 발생 직후부터 수습, 제도적 대처까지 경기도가 실제로 무엇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를 따라간다. 최초 신고자 진술, 목격담, CCTV 자료 등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고, 소방재난본부의 화재 진압과 구조 활동을 시간대별로 상세히 담았다. 화재 원인에 대한 경기도 합동조사단의 의견과 함께 경기도 재난안전대책본부 가동과 지방정부 최초의 긴급생계비 지원 결정 과정, 숙박 및 식사, 의료, 심리, 통역, 법률 등 유가족 지원 내용도 수록했다. 기존 법과 절차에 부딪히고 이를 극복해 새로운 매뉴얼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기록됐다. 유가족 인터뷰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의 문제 제기도 함께 다뤘다.
2부는 사회학자, 법률가, 노동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가 이 사건을 ‘불가피한 비극’이 아닌 ‘구조적 재난’으로 규정하며 진단한 결과다. 대형 참사를 초래한 아리셀 공장의 실태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했다. 또 ‘위험의 외주화, 이주화’로 표현되는 이주노동자 산재 문제를 깊이 파고들었다. 이어 이민사회국 신설과 산업안전체계 개선 등 진행 중인 경기도의 노력을 담았다.
이종돈 경기도 안전관리실장은 “‘눈물까지 통역해달라’는 단순한 사고 경위서가 아닌, 경기도가 지난 1년간 무엇을 반성하고 어떻게 변화로 이어갔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의 기록”이라며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고서를 책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책속으로
결국, 출근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직원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출구조차 찾지 못한 채 연기에 질식하거나 화염에 휘말려 희생됐다. 화재 발생 후 단 42초 만에 공장 내부는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화재 당시 작업장 내부 CCTV 영상을 보면, 마치 전원이 꺼진 듯 화면 전체가 암흑으로 변했다. 시야는 사라졌고, 구조는커녕 탈출 방향조차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화재 발생 57초 만에 첫 신고 전화가 접수됐지만, 불길은 그보다 더 빠르게 사람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p30
열폭주로 인한 배터리 폭발은 일반 화재 현장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당시 2층 작업장에는 리튬 배터리 3만 5000여 개가 그야말로 한 곳에 쌓여 있었다. 그곳에 불이 났다니,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현장도 그랬다. 건물을 녹일 듯한 뜨거운 화염과 하늘로 치솟은 거센 연기도 두려움이었지만, 무엇보다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모두를 공포로 떨게 했다. ‘펑’, ‘쾅광’, ‘타탁’, ‘탁탁탁’. 검은 견기 속에서 쉼 없이 반복적으로 폭발음이 들려왔다. 불길 속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계속 됐다. 리튬 배터리 폭발음이었다. 이처럼 화재 현장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었다. -p40
화재 희생자 다수가 이주노동자인 현실을 직시한 경기도는, 피해자에 대한 호칭부터 새롭게 정비했다. 김동연 도지사는 공식 문서와 보도자료, 모든 대외 표현에서 ‘외국인 노동자’ 대신 ‘이주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 용어의 선택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의 태도와 관점을 반영하는 첫 번째 지점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외국인 노동자’가 거리를 전제하는 행정 용어였다면, ‘이주노동자’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담아내는 명칭이다. -p98
경기도 전지공장 화재 사고는 그 피해의 규모와 성격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대부분의 희생자가 외국 국적자였고, 그들의 유가족 상당수는 해외에 체류 중이었다. 사망자 중 외국인 수가 내국인 수를 넘어선 이 사고는, 기존의 산재 사고 대응 체계로는 감당할 수 없는 복합적인 과제를 동반했다. 희생자에 대한 보상, 장례 절차, 유족의 입출국 등 그 어떤 것도 단순히 처리될 수 없었다. -p123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자신들이 매일 포장하던 그것이, 사실은 불량으로 가득 찬 폭탄더미라는 것을. 보호 장비도, 방화벽도, 훈련도 없이 노동자들은 매일 그 곁에서 일했고, 그날도 여전히 평소처럼 전지를 옮기고, 쌓고, 검수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폭발하기로 예정된 시간 옆에 서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참사의 진짜 이름이었다. -p210
경기도 전지공장 화재 사고의 희생된 이주노동자들은 재외동포(F-4)비자를 보유했음에도 피할 수 없었던 이주노동 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국 정부의 이주비자 정책은 복잡하고 변화가 많았다. 복잡한 비자 정책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불안감과 고용 불안정성을 높이는 것으로 작용하고, 질 낮은 일자리라도 받아들이게 만들고 있다. -p249
기업은 제도적 공백을 이용하여 사업장을 쪼개고, 편법적인 고용계약 관계를 만들어 위험을 외주화한다. 위험관리 비용이 도급 단가로 실현되지도 않는 소규모(하청) 사업장들은 이윤 실현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노동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피해가 유달리 컸던 배경에는 이런 ‘구조적 모순’이 숨어 있다.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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